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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600년 전 무로마치(室町)시대 문헌인 1466년 「온료켄모쿠로쿠(陰涼軒目録)」에 따르면 「2탕효에(二の湯兵衛)」, 「타니노효에(谷の兵衛)」라는 기술이 있으며 그 이전에도 같은 명칭이 존재했었던 것으로 미뤄 당시 창업시기는 600~650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무로마치시대에는 이미 「효에(兵衛)」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타노보효에(北の坊兵衛)」, 「2탕효에(二ノ湯兵衛)」, 「효에 샤쿠시야(兵衛 杓子屋)」 등》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인 1594년 「유야마유이쇼기(湯山由緒記)」에 의하면 당시 아리마온천 중심지에 자리잡은 대표적 여관을 가리켜서 12보(坊)라고 불렸었으며 효에코요카쿠는 /기타노보(北の坊)/라는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효에, 효에」라고 불렀기 때문에 어느새 「효에(兵衛)」라는 이름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게 됐으며 그 이후에도 그 이름을 계속 유지하며 수백년이 지나갔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효에」라고 명명했다는 구전이 남아 있는 것은 그에 의해 효에라는 이름을 유지하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메이지(明治)시대 초기의 「효에」

왼쪽(상단 왼쪽) 의 서양식 건물이 효에코요카쿠의 옛 모습입니다 (현재 「긴노유(金の湯)」이며 메이지 16년(1883년)에 서양식 건물로 신장했습니다). 이 건물은 「2탕(二ノ湯)」 가운데에 위치하며 오른쪽 끝(하단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당시 효에 별장(후에 효에 본관으로 됨)입니다.
현재도 아리마온천가에는 목조 3층짜리 전물이 남아 있지만 이도시대 당시에는 아리마온천의 대부분 숙소가 3층 건물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리풍경은 교토 오사카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었으며 분세이(文政)10년(1827년) 기록에 따르면 「하녀 안내를 따라 사다리로 2층으로 올라가며 또다시 사다리로 3층으로 올라간다. 어느 숙소나 아리마에서는 3층까지 신을 신은 채 올라갈 수 있으며 바닥이 모두 나무 판자로 돼 있다. 게다가 3층에도 화장실이 있어서 마치 정원에 있는 것과 같다.」
라고 기술이 돼 있어서 당시로서는 놀라울 만한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효에(兵衛)라고 쓰인 제등을 든 당시 지배인

효에(兵衛)라고 쓰인 제등을 든 당시 지배인
효에(兵衛)라고 쓰인 제등을 든 당시 지배인

전용 욕장이 없었던 시절 온천이 나오는 장소는 한군데 밖에 없었고 남쪽을 「이치노유」, 북쪽을 「2탕」로 구별해서 각 숙소마다 정해진 욕조에 들어가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효에는 2탕에 소속했으며 욕조는 2탕 가운데에 위치했습니다. 욕조에는 불을 켜서 각 숙소의 숙박객들은 각 숙소가 마련한 막을 쳐서 목욕했다고 합니다.


각 숙소는 유죠(湯女)라 불리는 안내월을 배치시켜서 온천이 혼잡되지 않도록 정리하거나 편의를 제공했었다고 합니다. 효에의 유죠는 대대 「미야」라고 불렸습니다. 띠를 앞에서 맨 사람이 유죠입니다.
「효에에는 떨어지거나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미야가 있으며」

1월2일에 치러지는 입초식 행사는 아리마의 기생이 그 당시 유죠가 돼서 옛날 모습을 현재에 전하고 있습니다.
셋츠(摂津)명소도회간세이(寛政)10년(1798년)에서 발수

타이쇼(大正) 2년(1913년) 당시 사진

타이쇼(大正) 2년(1913년) 당시 사진

효에는 본온천(현재 긴노유의 족탕이 있는 위치) 정면에 있었습니다.
「이치노유는 고쇼보(御所坊), 2탕는 효에에서 불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고쇼보란 천황가(天皇家)의 숙사라는 뜻이며 효에는 고쇼보와 나란히 하는 숙소였기 때문에 천황이 행행할 때 공봉역(供奉役) 및 병위부(兵衛府) 숙사로서 이용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헌에 「효에는 2탕 정면에서 온천과 숙소 사이에 세건물이 있으며 유아도 기어 들어간다. 유발같은 형태로 된 온천 바닥에 들어가려면 바로 정면에 있다」는 기술이 남아 있습니다. 분카(文化)13년(1816년) 당시 효에 주인이자 아리마온천의 의사였던 효에 모토시키는 야마토 다카토리한(大和・高取藩:현재 나라현에 위치했던 행정구역 명칭) 의사에게 온천을 증류해서 만든 소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옛 객실(타이쇼시대 건축) 일반 객실
옛 객실(타이쇼시대 건축)
샹들리에가 매우 세련돼 보입니다.
일반 객실

일반이라고 하지만 옛날 객실은 매우 훌륭하게 지어진 것이 많습니다. 다다미 10장이라고 하는데 현재 10장 사이즈보다는 훨씬 넓습니다.
여관에 남아 있는 옛날 기록에는 한 고객이 서른명 가량 되는 종자를 데리고 온천을 찾아와서 다다미 10장짜리 객실을 이용했다고 기술돼 있습니다.